최근 이야기

 

빛처럼, 바람처럼


- 김대현 (인도JTS 활동가)


“란제이! 기계에 무슨 문제 있는 거야? 갑자기 왜 이렇게 잡음이 들리지?”

“수렌드라! 마이크 선이 꼬였잖아. 다시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테이핑 해 봐.”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자, 자. 다들 힘내서 준비하자.”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음향, 객석, 무대 등 각자 맡은 부분을 최종 점검하느라 교사들 모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송수신기 너머로 급하게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랍 브라더! 꼭두각시 팀이 사용할 머리핀이 없는데요.”

“소랍 브라더! 파운데이션 어디에 있죠?”

“소랍 브라더! 아이들 먹을 비스킷이 모자라요.”

소랍 브라더! 소랍 브라더! 소랍 브라더! 여기저기서 내 이름을 부르느라 난리였다. 무대 뒤 대기실로 뛰어 들어갔다. 70여 명의 학생들과 십여 명의 교사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교사들은 아이들 공연복 갈아입히랴, 분장해 주랴, 조용히 시키랴 진을 빼고 있었다.


“머리핀은 어제 환영식 때 화동들이 사용했잖아. 환영식 의상 담당이었던 디네스한테 확인해 봐. 파운데이션도 같이 있을 거야. 비스킷은 지금 가져오고 있으니까 조금 기다리고.” 방송국 생방송 현장이 이런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싱글벙글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소랍 브라더! 이 옷 어때요? 멋지죠?”

“소랍 브라더! 공연할 때 저희가 볼 수 있는 곳에 있을 거죠?”

땀을 뻘뻘 흘리는 교사들과 달리 아이들은 정말 밝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공연복을 입은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아이,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이려고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두 겹 세 겹 덧바르는 아이, 공연할 춤 동작을 연습하는 아이, 모두들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1,5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선보여야 하는데 떨지도 않고 어쩌면 저렇게 밝고 여유로울까? 대견함 반 놀라움 반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랍 브라더! 스님과 귀빈들께서 곧 쁘락보디홀로 가십니다. 대기해 주세요.”

송수신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무대 아래 내 위치로 돌아와 사회자 아르준, 음향 담당 란제이, 대기실 담당 아제이의 이름을 불렀다. 자, 이제 시작이다.

“오케이! 준비됐어요.”





개교기념식이 열린 쁘락보디홀을 가득 메운 1,500여 관객들의 모습이다. 자리가 부족해 밖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수자타 아카데미 17주년 개교기념식

2011년 1월 13일 오전 10시 30분, 수자타 아카데미 17주년 개교기념식이 시작되었다.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감독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차라리 내가 무대에 올라가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게다가 집중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계속 음향을 점검해야 하고 대기실 상황도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갑자기 바뀌는 상황을 사회자에게 알리고 한국인 관객들에게 간간이 공연을 설명해 주는 것은 덤이었다. 그래도 슬쩍슬쩍 곁눈질을 하며 아이들의 공연을 보았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공연을 즐기며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스피커 음질이 좋은 것도 중요하고 관객들이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아이들의 마음이 더 중요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신나고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번 개교기념식은 학생들 공연과 내․외빈 환영사 및 축사로 진행되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들이었다.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고 탄성도 지르며 공연자들과 하나가 되어 갔다. 유치원생들이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힌디어로 개사한 곡에 맞춰 율동을 할 때 관객들은 “귀여워!”를 연발했다. 흥겨운 인도 타악기 공연에서는 모두 어깨를 들썩거렸고, 독특한 인도 전통춤 무대는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다. 태권도 공연자들이 허공을 가르며 이단옆차기를 할 때는 큰 박수가 나왔고, 남녀 학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꼭두각시 공연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메모리얼 공연’에서 학생들이 연기하는 모습이다.

춤과 연기로 수자타 아카데미의 17년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공연과 스님의 인사 말씀까지 끝나고 이제 마지막 순서 하나만 남았다. 개교기념식의 대미를 장식하는 ‘메모리얼 공연’이었다. 법륜스님께서 버려진 땅 둥게스와리를 방문하여 원을 세우신 지 17년이 흘렀다. 그 17년 역사를 대사 없이 연기와 춤으로 표현한 게 바로 이 메모리얼 공연이었다. 7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연기가 절정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현수막이 펼쳐졌다. ‘빛이 되어 주신 여러분,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도 꽤 있었다. 나 역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 위로 지난 한 달이 스쳐 지나갔다.  




‘메모리얼 공연’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모든 공연자가 무대로 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현수막 문구가 눈에 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

‘이다르 아이에!’(이쪽으로 오세요), ‘배티에!’(앉으세요), ‘쭈뻐 러히에!’(조용히 하세요), ‘여항 데키에!’(여기 보세요). 공연 연습을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그리고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힌디어들이다.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도전이다. 영어, 힌디어, 한국어에 보디랭귀지까지 섞어 가며 말하는 것도 모자라 칠판에 그림을 그려 가며 열변을 토한다. 


오늘은 네 명이 결석을 했다. 어제는 다섯 명, 엊그제는 거의 절반인 일곱 명이 연습에 빠졌다. 모든 공연이 그렇지만, 연기와 춤을 함께해야 하는 메모리얼 공연은 그 어떤 공연보다 구성원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그런데 수업 시간이 서로 다른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이 함께하는 공연이라 연습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아이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결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어제 연습에 빠진 아이들에게 결석한 이유를 묻는다.

“집에 농사일 할 사람이 없어서 부모님 도와 드리느라 학교에 못 나왔어요.”

“교복을 빨았는데 안 말랐어요. 옷이 한 벌밖에 없어서 말리고 오느라 늦었어요.”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아이들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연습을 하고 있는데 몇 명이 장난을 치며 떠든다. 주의를 주니 잠깐 조용해지는 듯하다가 다시 떠들기 시작한다. 음악을 끈다. 아이들 말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지는지 그제야 사방이 조용해진다.


연습을 마치고 혼자 텅 빈 교실에 앉아 숨을 돌린다. 오늘도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벌을 주고, 때로는 타이르는 등 방법만 다를 뿐이지 나는 아이들과 매일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이들이 연습에 빠지거나 열심히 하지 않을 때에도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아이들을 혼내거나 무섭게 대할 때에도 내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예뻐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날마다 벌어지는 이 행복한 전쟁이 정말 좋다. 



‘메모리얼 공연’ 중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구걸하지 않기 캠페인’을 연기하는 모습이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우리

누가 나를 덥석 안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함께 행사를 준비했던 교사 디네스와 아지뜨였다. 포옹을 해 주고 내 목에 꽃을 걸어 주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소랍 브라더! 당신이 최고 중 최고예요!”

참으려 했던 눈물이 터졌다. 공연을 했던 아이들도 저 멀리서 달려왔다. 모두를 힘껏 안아 주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공연 연습을 하려고 1시간 넘게 진흙탕 길을 걸어서 온 아이, 쉬는 시간에 막춤을 춰서 팀 분위기를 띄워 준 아이, 공연에 꼭 참가하고 싶은데 다리에 종기가 생겨 연습할 때마다 너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 매일같이 나를 울리고 웃겼던 그들 모두를 뜨겁게 안아 주었다.


“사랑하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 및 학생 여러분!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순간을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전히 여러분을 게으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만약 누군가가 여전히 이곳을 버려진 땅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저는 여러분의 무한한 가능성과 수자타아카데미의 밝은 미래를 보았습니다. 17년 전 굶주리고 배우지 못하여 구걸만이 유일한 길이라 여겼던 아이들의 모습을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 개교기념식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여러분에게 보내는 박수 소리를 들으셨나요? 그들이 흘리는 감동의 눈물을 보셨나요?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저에게 빛이 되어 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연을 준비했던 중학생들과 찍은 사진이다. 한국식 포즈를 취해 보겠다고 하더니 동시에 ‘브이’를 그렸다. 나는 인도인으로, 아이들은 한국인으로, 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되어 갔다.



개교기념식을 포함하여 성지순례단 저녁 프로그램, 인도 공화국 기념일 행사 등 내가 담당했던 행사들이 모두 끝났다. 이제 이곳 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 둥게스와리에서의 6개월은 행복하지 않은 적이 단 하루도 없었던, 감동과 열정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특히 개교기념식을 준비하면서 교사들, 학생들과 나눴던 따뜻한 체온과 순수한 교감은 나에게 커다란 빛이었다. 그들의 선량한 눈빛과 맑은 영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거쳐 간 이곳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 기꺼이 한줌 바람이 되어 그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 주고 싶다.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도 나는 매일 수자타 아카데미 친구들을 만나러 올 것이다. 바라는 것 없이 베푸는 저 밝은 빛처럼, 저 시원한 바람처럼.


※ ‘소랍’(Sourav)은 수자타아카데미 교사와 학생들이 지어 준 필자의 인도 이름이다. ‘향기로운 빛’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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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2개
  •  윤연진
    2011/05/05 22:43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꼭 둥게스와리에 활동가로 가 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_()_

  •  강지연
    2011/10/17 16:58

    정말 감동적이네요. 글을 읽으니 모든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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