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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센동' 피해 긴급구호를 다녀와서

필리핀 JTS 송현자

  작년 12월 16일 금요일 밤부터 17일 토요일 새벽에 발생한 태풍 피해는 가가얀 데 오로(이후  가가얀)와 일리간 시내에 사상 최대의 재난 상황을 초래하였다. 부키드논 산간지역에 폭우가 내려 그 빗물이 가가얀과 일리간 시내로 한꺼번에 흘러 들면서 급류가 되어 강변 지역, 섬 지역을 쓸어갔다. 그 동안 내가 들어왔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왔던 ‘태풍 피해가 없는 민다나오’라는 문구는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티브이도 없고 인터넷도 잘 안 되는 곳에 머무는 우리는 12월 18일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가가얀 시내에 태풍피해로 100명이 넘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가얀 시내에 사는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보니 집이 쓸려나간 이재민들이 대피소에 모여 있고 가가얀 시내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이 파손되어 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어떻게든 물을 구해서 공급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인근 리보나시 소방소에 들렀다. 시장을 만나 소방차를 이용해야겠다고 얘기할 작정이었다. 다행히도 소방차가 있었다. 담당자에게 상황을 얘기하니 리보나 시장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집에 찾아갔다. 고맙게도 리보나 시장님은 소방차가 물을 싣고 가가얀에 물을 공급하도록 바로 지시를 내려 주었다. 그래서 그날 우리는 소방차로 12,000리터의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우리는 또 220리터짜리 드럼통 15개를 구입하여 물을 채워서 트럭에 싣고 가가얀 시내로 날랐다. 분배할 때의 무질서와 혼란이 염려되기도 하였지만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줄을 세우고 서로서로 질서를 일깨워 큰 혼란없이 물을 나누어줄 수 있었다. 물이 필요한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단물을 공급할 수 있어서 우리는 기뻤다. JTS는 태풍 피해 한 주 동안 주간 소방차와 트럭을 이용해 가가얀 시내 5개 지역에 생명수 4만5백리터 물을 전달했다.  



 피해 정도가 심한 지역에 대한 답사에 들어갔다. 마까산딕, 발룰랑, 까르멘 등 강변지역이 피해가컸다. 마까산딕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2010년 JTS 센터로 이사하기 전에 사무실로 썼던 집도 피해를 입었다. 집주인 말에 따르면 2층까지 물이 찼고 그 골목에서만 4명이 사망했다고 하였다. 소름이 돋았다. 이재민 대피소에 찾아갔다. 농구장이나 학교 강당에 차려져 있는 대피소는 이재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다행히 먹을 것과 물은 이재민들에게 충분히 제공되는 것 같았다.



 세비어 대학 구호센터 담당자인 트렐 보르하(필리핀 JTS 자원봉사자)씨에게 이재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트렐 씨는 정부기관이나 여러 단체에서 음식, 물 등이 많이 지원되고 있다며 이재민들이 대부분 살림살이가 쓸려나가서 조리도구/식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JTS에서는 집이 전부 쓸려나갔거나 살림살이를 모두 소실한 1,000가구를 대상으로 조리도구/식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빨래대야, 들통, 바가지, 물통, 후라이팬, 솥, 주걱, 국자, 국그릇(대), 컵(6개), 접시(6개), 숟가락(6개), 포크(6개)이 지원품목으로 확정되었다. 이건 완전히 신혼 살림살이 도구다. 

 피해 지역과 대피소를 답사하여 우선적으로 분배할 지역을 선정하였다. 가가얀 강 가운데 있던 반퉁 섬에 살던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어퍼발룰랑에 1차로 분배하기로 하였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DSWD(사회복지과)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이재민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 피해 주민 가운데서 집이 완전히 쓸려나간 가구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였다. 224가구가 그 대상이었다. 

 12월 26일 아침, 마닐라에서 이원주 대표님을 비롯하여 3명, 리보나 실리폰의 청소년 10명이 함께 참여해 구호품 분배를 시작했다. 구입 후 세비어 대학에 보관해 두었던 물품을 트럭에 싣고, 대피소에 도착, 질서정연하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정리를 했다. 바랑가이(한국의 동개념) 직원은 번호대로 사람들 줄을 세우고, DSWD 직원은 번호표를 받아 카드에 기록하고, 마닐라와 실리폰에서 동참한 자원봉사자들은 물품을 나누어주었다. 한아름 살림도구를 받고 대피소로 향하는 피해주민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따가운 햇볕 아래서 분배해 주느라 덥고 힘들었지만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나도 행복해졌다. 쌓여 있던 물품은 1시간 반 정도 만에 주민들에게 다 분배가 되었다. 부분 피해를 입은 가구 역시 살림살이가 쓸려나가기는 마찬가지여서 물품을 나누어주었다.



 가가얀에서 물품 지원과 식수지원 외에 JTS에서는 방역 작업도 실시했다. 태풍 발생 후 3일이 지나면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는데 방역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JTS에서는 센터에 있는 방역기를 들고 가서 마카산딕과 발룰랑 지역에서 물이 고여있는 곳을 중심으로 방역작업을 했다. 주민들은 아이들이 병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고마워했다.

 1차 지원 후 가가얀 시내의 이재민들에게는 충분히 물품이 지원되고 있다고 판단하여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일리간 지역에 지원을 하기로 하였다. 12월 29일 일리간 교육청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피해 지역을 돌아보았다. 피해 상황이 가가얀 시내와 비슷하였다. 일리간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만둘록 지역의 집들이 이번 홍수로 다 쓸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무슬림 지역이라 사전허가 없이는 한국인이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교육청 관계자는 이 지역이 일리간 시내와 떨어져 있는데다 무슬림 지역이어서 상대적으로 물품지원이 적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교육청 관계자에게 방문할 수 있게 연락을 해보라고 하고 허가가 떨어지면 다시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JTS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무슬림 인사를 찾아보았다. 다행히도 JTS를 안내해 줄 무슬림 지도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월 3일 라나오 델 노르테 주의원의 안내를 받아 바랑가이 만둘록(Mandulog)을 찾아가 조사했다. 9명이 사망, 24명이 실종되었으며 245가구의 집이 완전히 파손되고 300가구 이상이 가재 도구를 잃어 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강변 옆에 있는 만둘록 학교(8개 교실, 385 등록생)는 콘크리트 벽과 기둥이 쓸려가고 물에 젖은 분필통이 부서진 기둥에 걸쳐져 있었다. 지붕이 남아 있는 건물에서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원도 부족했다. JTS는 이 곳에 2차 지원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1월 5일 전직 바랑가이 캡틴이었던 봉봉 아줌마, 교육청관계자, 바랑가이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피해주민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 1월 7일에는 일리간 시의 자원봉사조직에서 동참해 도움을 주었고 바랑가이 캡틴과 공무원, 라나오델 노르테 주의원 등의 협조로 560가구에 물품 분배를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보온물병과 매트, 이불이 더 추가되어 완전한 살림도구를 지원할 수 있었다. 물품을 들고 아이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음짓는 아버지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태풍 피해 지역을 조사하고, 물품을 구입하고 전달하느라 필리핀 JTS에서는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더운 가가얀 시내에서 땀 흘리며 바쁘게 보냈다. 그렇지만 그 어느 해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보람된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였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차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살림살이와 용기를 주었으니 말이다. 필리핀 JTS에서 이렇게 활동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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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다나오 태풍피해 지원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멀리 마닐라에서 이원주 대표님을 비롯해 이규초, 황종일, 김상민, 이다진님이 참여해주셨습니다. JTS 센터가 위치한 실리폰에서는 미오와 랄란, 난띵을 비롯해 고등학생 8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랄란과 난띵은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그날 벌어 그날 사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이재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물품을 지원하는데 자원봉사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리간 교육청의 브라이언, 무카드의 마카람본씨, 자원봉사단체 One for Iligan 회원들이 만둘록 지원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도와주신 분들의 짧은 소감을 함께 실어봅니다.

미오 (실리폰, 민다나오)
물을 싣고 콘솔라시온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물을 서로 먼저 받아가려고 아우성이었다. 수도관이 파손되어 며칠 동안 마시고, 먹을걸 끓이고 씻고 할 물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사람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1시간 반 동안 물통에 물을 채우고, 두 시간 거리인 실리폰에서 가가얀 시내까지 운전해왔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생명 같은 물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랄란 (실리폰, 민다나오)
피해 지역에 가서 부서진 집들을 보았을 때 매우 슬펐다. 내가 돈이 많으면 그 사람들한테 집을 지어줄텐데 생각했다. 조리도구와 식기를 나누어줄 때는 햇볕이 너무 강해 힘들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뻤다.

난띵 (실리폰, 민다나오)
재난 지역을 보았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부서진 집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여웠다. 조리도구, 식기를 나누어줄 때 매우 기뻤다. 물품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다진(마닐라 국제학교 학생)
1년에 한번뿐인 크리스마스를 민다나오의 태풍피해자들을 도우면서 보냈습니다. 긴급상황이라 조금은 혼란스러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뉴스에서만 듣던 상황을 실제로 느끼고 체험해서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겁니다. 짧지만 의미있는 1박2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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