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아름다웠던 그때로!

- 신축보다 길었던 학교 보수공사

 

2015년 9월에 시작한 학교 보수공사를 2016년 5월에야 마무리했다. 그동안 담당자도 4명이나 거쳐 갔고, 군청 관계자와 마을주민이 참여하는 회의도 학교를 지을 때보다 더 자주 했다. 주민의 손으로 새롭게 단장된 교실에서, 오는 6월 새 학기부터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하길 바란다.

함께하고 글쓴이 필리핀 JTS - 박시현 활동가

 

 

가가후만은 JTS가 필리핀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지원한 오지 마을이다. 마을까지 가는 길이나 마을 전경이 무척 아름답지만, 워낙 깊은 산 속의 외진 곳이라 JTS가 2003년 방문할 때까지 다른 정부기구나 비정부기구에서 마을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옥수수와 고구마로 겨우 배고픔을 면하는 정도인 데다가 마실 물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임파하농 초등학교는 10㎞나 떨어져 있었고, 학교까지 가는 길이 워낙 험해 그 길로 다닐 수 있는 12살이 되어야 겨우 1학년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마을 다투(부족 공동체 지도자) 만사이사얀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이 조상대대로의 꿈이라면서 학교가 들어서기를 간절하게 소망했고, JTS는 학교 건축을 시작하여 2004년에 학교를 완공했다.

 

2015년 9월 1일 가가후만을 처음 방문했다. 같이 갔던 활동가가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보다 더 멋있다고 할 정도로 풍광이 좋았다. 하지만 다른 마을과 달리 가가후만에서는 그 흔한 옥수수밭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길옆에는 이곳 사람들이 먹지 않는 고사리만 지천으로 자라있었다. 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남자들은 다른 마을로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고 마을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들뿐이었다.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학교 

 

2009년 마을에 광산이 들어오면서 가가후만 주민 대부분이 돈을 많이 주는 광산에 가서 일하느라 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후 그 광산이 문을 닫았는데, 그동안 모든 농지가 황폐해졌기 때문에 주민들은 다시 농사를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전보다도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 사람도 별로 없고 휑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마을 풍경과 달리, JTS 가 지은 학교로부터 50m 떨어진 곳에는 올해 필리핀 정부의 빈곤퇴치를 위한 지역사회 기반 개발 프로젝트(KC -NCDDP)에서 지어준 콘크리트 교실 한 칸이 있었다.

 

2004년에 지은 학교에 도착해서 보니 왜 보수공사가 필요한지 한 눈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건물 양쪽에 있었던 복도는 썩어서 사라져버렸고, 마룻바닥에 난 구멍으로 아이들 발이 빠지기도 한다고 했다. 학교가 이 지경인데도 왜 주민들 스스로 고치려 하지 않나 싶었지만, 당장 생계가 급하니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가 됐다. 마을의 책임자인 다투를 만나 학교건물에 대해 의논하는데, 다투는 학교 건물을 부족 사무실과 방문객 숙소로 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1학년 54명, 2학년 32명, 예비 초등학생까지 100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새로 지은 교실 한 칸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 후 9월 말까지 3차례의 마을회의를 통해서 주민들이 학교 복도, 난간, 천장, 지붕 연장, 창문과 칠판 교체, 페인트칠 등 학교 보수공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데 뜻을 모으고 공정별 책임자도 선발했다.

 


부서진 복도와 사라진 난간 

 


학교 보수를 위한 주민회의 

 

10월에 가가후만이 속해 있는 말리복 군의 군수와 몇 차례 만났는데, 군수도 가가후만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관심도 많았다. 그래서 군청이 트럭과 기술자, 푸드 포 워크(노동의 대가로 음식을 제공하는 참여유도 방식)를 지원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말리복 군의회에서 주민들에게 임금 대신 쌀 4만 페소(약 100만 원) 어치를 지급하기로 했다. 보수공사를 위한 사전준비가 끝나고,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학교 보수에 쓸 목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12월, 드디어 보수공사에 쓸 자재를 배달하려고 아침 9시에 군청 트럭 기사와 엔지니어를 만나기로 했는데, 트럭 기사가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나타났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자재를 배달해야 하니 일단 가가후만으로 출발했다. 비가 많이 와서 미끄러워진 길 때문에 차가 진창에 빠졌다 나오기를 반복했고, 한번은 도저히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어서 도로공사를 하던 굴착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 때문에 3시간이면 올 거리를 5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겨우 도착했다. 약속한 시각보다 도착이 늦었음에도 트럭 기사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고, 목이 빠지라 기다리던 주민들도 웃으면서 자재를 옮겨준 덕분에 무사히 배달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보수공사를 시작하려고 하니, 주민 대부분이 마을 진입로 도로공사에 참여하고 있었고, 다투 역시 도로 공사에 매진하고 있어서 책임자로서 마을사람들을 조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군청에서 푸드 포 워크도 제때 지급이 되지 않아, 학교 보수공사 일을 하는 목수들의 생계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큰 의욕을 보이며 참여하던 사람들도 군청의 지원이 미진하니 점차 생계를 찾아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이 문제를 다투에게 상의했더니, 자신이 책임지고 주민을 조직하고 군청을 방문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다투가 군수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마침내 군청에서 쌀 25㎏을 지원받았지만, 이는 목수 한 사람의 5일분 지급량에 불과했다. 그 후 몇 차례 더 군청을 방문했으나, 더는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2016년 3월 내부 회의를 거쳐 JTS가 직접 푸드 포 워크를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주민회의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공사는 다시 활기를 찾아, 부족한 목재를 2주 만에 추가로 마련하고 목수 4명이 매일 대패질을 하여 자재를 준비했다. 당장 생계가 어려운데도 자원봉사에 나서준 주민들이 고마웠다.

 

학교 보수공사는 복도 수리를 시작으로 1주일이면 한 가지 공정이 마무리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매주 답사를 가서 공정과 자재 재고를 점검하는데, 한 번은 칠판으로 사용해야 할 합판이 문이 되어 달린 걸 알게 됐다. 왜 그렇게 했냐고 물으니, 책임 목수가 환하게 웃으며 칠판은 원래 합판 한 장만 필요하니까 남은 합판으로 부서진 문을 수리했다고 했다. 칠판이 작아서 불편하다는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서 크게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이지만, 이미 교실에는 칠까지 끝난 칠판이 떡하니 달려 있어서 그저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 중에 핸드폰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업하면서 우리와 소통하기 힘들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핸드폰을 가진 주민에게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꼭 문자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보수가 끝난 학교 전면 

 

한 번은 학교 건물에 페인트칠이 끝났다고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건물을 가리키는데, 여기저기 얼룩덜룩한 무늬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페인트를 제대로 젓지 않고 사용해서 처음에는 연한 미색이었던 페인트가 갈수록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한 것이었다. 하지만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잘못 칠했다고 솔직히 지적하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페인트가 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니 페인트를 한 번 더 칠하자고 주민들에게 제안했다. 주민들은 흔쾌히 받아들이며 JTS의 기술자문인 미오 씨가 다시 안내해주는 페인트 섞는 법, 젓는 벗, 칠하는 법을 집중해서 경청했다.

 

다음 주. 이번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방문한 학교는, 벽과 지붕 옆이 거의 같은 색으로 칠해져서 한결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내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최고”라고 하니 모두 환하게 웃는다. 따라오라고 손짓을 해서 따라가니, 전에는 칠이 되어 있지 않았던 곳을 가리킨다. 비가 와도 문제없을 만큼 페인트가 구석구석 잘 칠해져 있었다. 다시 한 번 “최고”라고 하는데 내 기분도 좋아졌다.

 

2015년 9월에 시작한 학교보수가 2016년 5월에야 겨우 끝났다. 긴 시간 동안 기다려주고 함께 하고, 이런저런 요구에도 늘 웃으며 받아주었던 책임 목수와 방문 때마다 활동가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애써 주었던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하다.

 

보수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몇몇 아이들이 교실 옆에서 놀고 있으니 미오씨가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수줍어하면서 손가락 한 개를 올렸다. 그 아이에게 이름을 쓸 줄 아느냐고 묻자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임시 교사한 명이 예비 초등학생, 1학년, 2학년을 한 교실에서 한꺼번에 가르치는 상황이니 당연하겠구나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오는 6월이면 부키드논 주 교육청 원주민 교육담당자가 교사 3명을 추가로 파견한다고 한다. 머루 빛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하루빨리 학년별로 수준에 맞게 공부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페이스북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의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이나, 상업적 홍보글은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인증번호     CD 댓글등록
다음글 수밀라오 군 특수학교 건축 기공식
이전글 따뜻한 5월 어느 날의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