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바갈랑잇 학교 보수 이야기

학교에 새 옷 입히기 프로젝트

 

바갈랑잇(Bagalangit)은 필리핀JTS센터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마놀로폴티치(Manolo Fortich)군에 있는 마을로, 끝없이 이어지는 파인애플 농장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나온다. 2006년 JTS와 필리핀 교육부 지원으로 지어진 교실 4칸짜리 학교에서 4명의 선생님과 함께 111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답사 차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교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붕 물받이는 떨어져 있고, 벽은 이곳저곳 부서져 있었다. 부서진 벽에는 대나무와 양철판이 얼기설기 덧대어져 있었다. 주민들 스스로 학교를 수리하는 곳은 거의 없었던 터라, 바갈랑잇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졌다.

학교 건물의 부서진 물받이

 

학교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도 수리가 시급해 보였지만, 조금 더 세세하게 보기 시작하니 고쳐야 할 곳이 정말 많았다. 창문도, 문손잡이도, 교실 내부도 성한 곳이 거의 없어 보였다.

 

그중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교실 천장이었다. 필리핀의 학교는 대부분 양철 지붕을 얹었는데, 비가 내리면 양철 지붕은 비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난다. 필리핀의 우기에는 짧은 시간에 매우 많은 양의 비가 내려, 지붕에서 나는 빗소리가 정말 크다. 우리 일행이 바갈랑잇 학교를 방문했을 때에도 우기였기 때문에 비가 많이 내렸다. 교실에 천장이 없으니 교실 내부에서 비가 양철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정말 크게 들렸다. 바로 옆에서 말을 해도 입 모양만 보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소리로 말해야 간신히 들릴 정도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수업을 했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학교의 열악한 상황을 보고나니, 바갈랑잇 학교 보수를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답사를 거듭할수록 강해졌다.

 

학교 보수공사에는 먼저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마을 주민들이 사업 참여를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갈랑잇 마을 리더와학교운영기구(PTCA)의 장, 선생님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학교 보수공사에 대한 전체 회의를 했다. 참석한 모두가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학교 보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했고, 적극적으로 학교보수에 대해 의견을 내었다. 그렇게 회의를 거쳐, 학교 외벽과 부서진 창문과 문, 계단을 보수하고, 교실 내부에 천장과 내벽, 칸막이를 추가로 설치해 더욱 튼튼한 학교를 만들기로 했다. JTS는 건축 자재를 지원하기로 하고, 공정별로 누구를 책임자로 하고 언제 공사를 시작할지 마을 주민들과 함께 논의했다. 7월에 방문하는 대학생 정토회 선재수련 봉사자들도 공사에 참가하기로 했다.

 

 

학교 보수 작업과 봉사팀 운영에 대한 JTS와 선생님, 주민들의 회의

 

주민들과는 원만하게 합의되었지만,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과정이 더 남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보수 공사에 참가하는 주민들에 대한 푸드 포 워크(food for work) 사업이었다. 무보수 자원봉사로 공사에 참가하는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넉넉지 않으므로 하루 일당 만큼을 쌀로 지급하는 사업 방식인데, 이 부분은 군청과 주민들이 협의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필리핀은 올해 7월 1일부터 대통령과 시장 등 중요 부처의 장들이 새로 부임했기 때문에, 우리가 공사를 준비하던 6월에는 군청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학교보수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푸드 포 워크” 지급을 요청하는 결의서를 군청에 제출했지만, 시장이 바뀌는 상황이다 보니 대응 속도가 더디었다. 선재수련 봉사자들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고 자재도 준비가 다 되었는데, 푸드 포 워크에 관련된 최종 승인이 쉽게 나지 않아, 공사를 시작할 때까지 마음을 많이 졸였다.

 

그러나 그 이외의 부분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덕분이었다. 보수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목재가 필요한데, 마을의 전 리더이자 목수인 다리오 씨가 책임지고 준비하기로 했고, 약속한 기한에 목재를 정확하게 준비해주었다. 보통 이곳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정해진 기한 내에 준비하기가 쉽지 않은데, 바갈랑잇 사람들은 흔쾌히 일을 맡을 뿐만 아니라 약속도 정말 잘 지켜주었다.

 

바갈랑잇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니 나도 덩달아 힘이 났다. JTS 센터에서 2시간 30분 걸리는 도시까지 가서 자재를 사고, 마을이 너무 멀어 배달이 안 된다 하여 덜컹거리는 JTS 트럭으로 마을까지 비를 맞으며 자재를 날라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고치는 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힘들기보다는 즐겁고 기뻤다.

 

모든 자재가 준비되고, 푸드 포 워크도 승인이 났다. 본격적으로 학교 보수 공사가 시작됐다. 마을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학교 보수의 총 책임자인 목수 다리오 씨를 포함하여 총 5명의 마을 목수들이 매일 열심히 일했다.

 

천장과 내벽을 붙이기 위한 뼈대를 세우고, 7월 13일부터는 대학생 정토회 선재수련 봉사자들이 합류하여 공정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였다. 봉사자들이 마을에 머물며 보수 공사에 참가하는 동안 나도 함께 마을에 머물렀다. 목수들과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힘을 합쳐 천장과 내벽을 붙이고 페인트를 칠하고 창문, 계단, 지붕 을 보수했다.

 

특히 천장을 붙이는 공정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습한 지역이기 때문에 천장을 붙일 때 나무로 만든 뼈대에 맞춰 못질을 똑바로 해서 잘 붙여야 했는데, 망치질을 제대로 해 본 사람이 거의 없던 봉사자들이 천장을 붙이려니 난관의 연속이었다. 크기에 맞게 합판을 자르고, 나무로 만든 받침대에 올라가 고개를 젖히고 못을 박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목수들과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더더욱 답답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천장 전체를 다 붙이고 나서는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현장을 점검중인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

 

공사 진행상황을 점검하러 오신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의 ‘천장이 약간 내려앉아 보인다’는 말씀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리오 씨와 함께 긴 막대기를 들고 천장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확인하면서 못이 덜 박힌 곳이 있으면 다시 못을 박았다. 그렇게 3~4일에 걸친 천장 재보수 작업 끝에 천장이 다시 올라가 붙은 것을 보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이 일 이후로 각 공정을 좀 더 꼼꼼하게 살피게 됐다.

 

한 번은 목수들이 페인트를 시너와 섞는데, 시너를 너무 많이 넣어서 페인트를 칠해도 벽에 나무색이 다 드러날 정도였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아무리 몸짓으로 이야기하려 해도 해맑게 웃으며 페인트를 칠하는 아저씨들. 서로 말이 안 통해도 답답하거나 짜증나기보다는, 웃으며 몸짓으로 이야기했던 일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페인트 문제는 나중에 필리핀JTS 코디네이터인 미오 아저씨가 통역을 해주시고 나서야 해결됐다.

바갈랑잇에서 열흘 남짓 머무르며 학교 보수공사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느낀 것은 ‘함께 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보수하는 동안 선생님들은 항상 우리를 살피며 불편한 점을 물어보고, 힘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목수들과 말이 안 통해 애를 먹고 있을 때는 슈퍼맨처럼 갑자기 나타나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아이들도 늘 우리 곁을 맴돌며 관심을 보였는데, 빗자루를 가지고 와 공사 현장의 먼지를 쓸기도 하고, 떨어진 못을 주워 가져다주기도 했다. 작은 일이지만 우리끼리만 했으면 오래 걸릴 일이었는데, 다들 기쁘게 함께했기에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일 하나하나가 “우리가 함께 학교를 고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했다.

 

 

천장에 페인트칠 중인 봉사자들

 

선재수련 봉사자들이 열흘 남짓 머무르는 동안 학교는 정말 눈에 띄게 바뀌었다. 녹슬었던 지붕에는 새로 페인트를 칠했고, 교실도 내벽과 천장을 설치해서 보다 정돈된 모습이 되었다. 이제는 천장 덕분에 비가 쏟아져도 교실 안에서 말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더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할 수 있겠다 싶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몰라보게 바뀐 교실에 선생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한 마음도 많이 들었다.

 

학교 내부 수리가 마무리 되고 선재수련 봉사자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무렵, 구하느라 애먹었던 학교 외벽 자재가 드디어 준비되었다. 선재수련 팀이 떠난 후 최종 점검을 하러 학교를 방문했는데, 아직 작업이 덜 끝났음에도 수업을 하고 있었다. 적은 양의 푸드 포 워크로 일하던 목수들이 더는 작업을 진행하지 않아 수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JTS가 3일 동안 푸드 포 워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다리오 씨를 비롯한 목수 5명이 외벽과 미늘살 창을 설치하고 페인트를 칠하는 등 마무리 작업을 진행했다.

 

마을 주민들,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선재수련 봉사자들이 함께 진행한 바갈랑잇 학교 보수 작업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열심히 도와주었던 마을 사람들, 세심하게 살펴준 선생님, 수줍어하며 허드렛일을 함께 해준 아이들. 모두 모두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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